발레를 좋아하게 되었다.
발레를 배우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소중하다. 얼마전 엄마랑 밥을 먹다가 취미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 했던 적이 있는데, 본업인 음악 말고 딱히 취미랄 게 없던 나한테 10년 넘게 수영을 취미로 해오고 있던 엄마가 '부캐'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해준 것이다. 엄마는 수영을 다니며 같이 수영반을 듣는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매일 수영이 끝나면 친구들과 수다 타임을 갖고 간식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 되었다. 그 덕에 갱년기가 왔음에도 딱히 스스로도 가족들도 타인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쾌활했고 건강했다. 코로나로 수영장이 폐쇄될때까지. 코로나 이후에 엄마는 거의 2년에 가깝게 수영장에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던 터라, 규제가 조금 풀어져 다들 헬스장에 나가거나 모임을 가질 때도, 엄마는 그렇게 가깝던 친구들의 얼굴을 2년 동안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수영장에 단 10분도 발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우울증이 왔고, 갱년기 증세가 심해졌고, 체중이 늘었다. 그제서야 우리 가족은 엄마의 갱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오고 엄마도 아빠도 한번씩 코로나를 앓았다. 그제서야 엄마는 아빠에 대한, 가족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자신의 '부캐'가 있는 수영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반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엄마의 우울증 지수는 완전히 정상치로 돌아왔고, 갱년기 증세도 마치 원래 없던 사람처럼 사라졌다. 체중도 전으로 회복되었다. 엄마는 다시 밝게 웃기 시작했고, 코로나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명랑해졌다.
작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논문을 쓰면서 허리 건강이 최악으로 나빠졌다. 어떤때는 걷기는 커녕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고, 주로 컴퓨터나 피아노 앞에 앉아서 작업하는 직업 특성상 앉아있을 때 식은땀을 쏟을 정도로 찾아오는 고통은 차라리 고문을 당하는게 나을 정도였다. 작업에 회의감이 드는 것은 물론 일상 자체에 큰 회의감이 찾아왔다. 무얼 위해서 이렇게 고통받으면서까지 작업들을 해내야 하는건지, 건강을 잃어버리자 일상도 꿈도 목표도 눈에 뵈는게 없어졌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나날이 지속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허리 통증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점심을 먹고 근육통 약을 입에 넣고 있을 때 엄마가 말했다. '수영을 해보는 건 어떻니?...'
동네에 체육센터 수영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인기가 너무 많은 탓이었다. 비교적 비어있던 과목중에 '발레'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수영보다도 더 재미를 붙였으니 다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