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 공간 확장

그간의 일들, 새로운 도전과 새로 사귄 친구들

Evy's Room 2023. 12. 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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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갖게 된 후로, 전개가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걸 깨달은 금요일 오후다.  공간을 활용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공간에 대한 이해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었을까. 뜬금없지만 우선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봤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공간 사업에 대한 리서치를 한들, 현장에서 직접 내 한 몸 바쳐 소속되어 체감하고 습득할 수 있는 지식과는 분명 다를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한 결괏값으로 너무나 나답게도 무분별하고(?) 급진적으로 의욕 넘치게 온갖 데에 이력서를 넣은 탓인지, 런베뮤 잠실점 트라이얼을 가게 되었다(어떻게 이런 전개가 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트라이얼에는 불합격했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작은 교훈도 깨닫게 되었다. 

 

  런베뮤 잠실점에 지원을 했던 첫번째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많다고 생각하면 많고 적다고 생각하면 또 적다) 여러 현장 경험 속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상업 공간에 대한 경험이 미비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내 판단은 살짝 미스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 공간에는 정말 대단한 청년들이 모여있었는데,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공간에 대한 경험이나 깨달음을 얻기에는 공간의 유속이 너무나 빨랐던 탓에 그걸 느낄 수 있는 찰나의 틈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저 베이글을 포장하고 또 포장했을 뿐이었다.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오갔고 어떻게 그 공간을 향유했는지에 대한 고찰 같은 건 없었다. 베이글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내가 당분간 베이글은 쳐다도 보기 싫어졌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더 신중하게 이력서를 넣었다. 모델 에이전시 위주로. 왜 모델 에이전시냐 하면, 우선 잘생기고 예쁜 모델들을 구경하며 일하고 싶다던가 그런 류의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다(물론 2% 정도는 있기도 하다). 촬영 현장이나 마케팅 담당 업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를 오가는 업무가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단순한 맥락의 발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력서를 쓰면서도 생각했지만 작곡 전공자였던 내가 에이전시 마케터로서 접점이란... 유연하게 매치시키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바를 차분히 적어 내려가다 보니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것과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꽤 유려하게 작성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접점이 있다고 판단, 우선 진행시켜 보기로 했다. 그 이후의 일은 또 그 이후의 나에게 맡기면 되겠지. 

 

  성수의 VR 공간 전시에 다녀온 이후로 동생에게 새로운 지인이 생겨 그의 전시에도 다녀왔다. 150명의 신진 아티스트들이 모여 상설전시를 여는 공간이었는데, 전시에 가보니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의 공간에 상당히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이런 상상을 한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묘한 동지애와 함께 자기 확신을 더해간다. 동생의 지인분과도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무려 종묘를 걸으면서).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니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와 윤곽도 더 확실해졌다. 역시 현업 종사자의 피드백은 그 어떤 말보다도 직관적이고 현실적이다!

 

  최근 케일럽 켈리(Caleb Kelly) 저자의 「갤러리 사운드(Gallery Sound)」를 읽고 많은 도움을 얻었다. 2023년 2월에 발행된 이 저서는 갤러리라는 화이트 큐브의 공간에 대한 고찰을 소리라는 매개를 통해 맥락있게 풀어낸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2장의 '갤러리의 소음, 소란스러워진 미술관'이라는 소주제였는데,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감히 말하지만, 관람객의 대부분은 이전에는 정기적으로 전시를 보러 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거대한 크기의 세계적인 미술관들은 매년 수백만 명을 그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끌어들이면서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 경험을 모색한다."라고 표현했다.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에서 수많은 관람객은 필연적으로 전시장 내부에 소음을 일으키고 그 결과, 조용하고 개인적이며 몰입을 요하는 감상보다는 예술 엔터테인먼트의 경험을 기대하는 큰 규모의 사회집단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예술 관광 현상이 새로운 건축 양식과 전시 공간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한다고 표현하였는데, 예컨대 '이전에는 창고였거나 산업 건축물이던 곳이 전시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다'라는 주장이 굉장히 공감되었다. 실제로 요즘 성수에도 이런 곳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느껴진다(정말이지 말 그대로 대단하고도 특별한 스페셜 성수). 또 저자는 "화이트 큐브의 인위적인 순수함과 깨끗함, 흰색투성이 내부와는 거리가 먼 전시 공간이 탄생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전시되는 예술은 '실제세계'의 의미를 부여받는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말 그대로 내가 원하던 그런 공간을 완벽한 한 문장으로 표현해 놓은 것 같았다.

 

  실제세계의 의미를 부여받는 장소. 그런 곳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그런 장소 아닐까. 마치 바로 어제까지도 어떤 무명의 예술가가 먹고, 자고, 살고 있었던 듯한 로프트(Loft)에서 잠시 내어준 공간 같은 그런 장소. 너무 거창한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지만(결코 또 거창한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어찌 되었든 내가 최종적으로 꿈꾸는 장소란 그런 곳이다.  

 

지인의 전시가 열렸던 150인의 예술가들의 공간 '이스트아뜰리에', 맨 오른쪽이 지인의 그림과 스티커. 주로 본인의 모습과 지인들의 모습을 캐릭터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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