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이 되자마자 생일 준비로 바빠졌다. 일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말은 사실상 내 생일이 있는 11월 1일부터 시작되서 크리스마스까지 쭉 이어진다. 바쁘게 12월까지 일정을 꽉 채워 지내다보면 너무 정신없고 빠르게 두 달이 지나버린다. 그래도 내가 일년 내내 가장 행복해하고 가장 기다리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것 같다. 엔프제인 나로써는 다른 사람들이 선물을 주는 것보다도 축하받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포인트인 것 같다.
내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준 건 대학원 시절부터 내 든든한 버팀목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존경하는 내 유학생 친구였다. 베이징에서 한국으로 와서 석사생활을 하며 만났던 그녀는 한국인인 내가 봐도 대단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서로를 알게된지 5년도 넘었는데 항상 변함없는 내 친구가 가장 먼저 식사자리를 예약해주었다. 베이징의 훠궈맛을 구현했다고 무려 베이징 출신인 친구가 예약해준 곳 '하이디라오' 에서 첫 생일 식사를 했다.
절대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는 친구다. 친구말에 의하면 중국 사람들은 한번 사람을 믿으면 절대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친구가 자기한테는 바로 나였다고...! 내년이면 박사과정까지 모든 학위과정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친구는 매년 여름, 겨울을 베이징에서 같이 보내자고 한다... 내년에는 베이징에서 하이디라오를 먹기로 약속했다. 벌써부터 친구가 돌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감동스러우면서도 조금 울먹거리며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 얼굴만 봐도 이젠 눈물이 먼저 고이곤 한다. 주변에선 매번 너무 주책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번 생일은 감사하면서도 미안하게도 레슨생들한테 많은 축하와 선물을 받았다. 축하는 감사한데, 선물은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이제 막 스무살을 지나고 있는 애제자부터 배운지 2개월도 채 안된 분의 선물과 중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나시는 분이 주고가신 선물도 있었다. 레슨으로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데... 사실 이런 일에는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야 가장 좋은 대처일지 잘 모르겠다. 잘 준비한 레슨으로 보답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로마와 관련된 선물을 참 많이 받았다. 레슨생한테도 아로마티카 괄사 세트를 받았는데, 친구에게도 아로마 향초 세트와 괄사 세트를 선물 받았다. 그만큼 피곤해 보였던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괄사 세트는 두개나 되서 하나는 얼굴용 하나는 전신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매일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따듯한 물로 샤워한 후 아로마 향초를 켜놓고 괄사 타임을 보내다보면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괄사 선물은 참 좋은 선물 같다. 기분좋은 상태로 친구를 떠올릴 수 있어서 친구에 대한 각별함과 고마움이 더 샘솟는 것만 같다.
케익 선물도 많이 받았다. 케키 하우스에서 제작한 레터링 케이크부터 가로수길에서 유명하다는 피스타치오 케이크,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석촌에서 유명한 맛집 팻어케이크도 있다. 사실 생일기간 동안 밥보다 케익을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생일 주간이 지나고부터는 식단을 관리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케익을 너무나 좋아하는 케익순이인 나조차도 이번 생일 케이크는 감당 못할 정도로 너무 많았다. 그 중 제일 맛있었던 건 가로수길 C27 피스타치오 케이크. 순전히 피스타치오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맛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느끼했다고 하더라. 케키 하우스는 모양만 예쁜게 아니라 맛까지 좋은 레터링 케이크인 걸 잘 알고 있기에 맛있게 먹었다. 팻어케이크는 가장 기본적인 생크림 케이크라 가족들이랑 식사 자리에서 한번에 다 먹어버렸다. 남자친구가 선물해줬는데 한입도 같이 못 먹어서 조금 미안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리리의 선물이 가장 감동이었다. 선물의 갯수보다도 이 많은 짐을 들고 잠실까지 와준 친구의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친구는 마르고 체구도 왜소한데 오랜시간 필라테스로 다져져서 그런지 체력이 굉장히 좋은 친구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2인분의 선물을 직접 들고 먼 거리를 오는 건 쉽지 않았을거다. 아로마 괄사와 티팟, 바닐라 베이스의 디카페인 찻잎까지 완벽한 선물이었다. 지금도 친구가 선물해준 바닐라 티를 마시면서 블로그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디카페인티'라는 점이 내 취향을 고려해준 것 같아서 참 사려깊었다. 어릴적부터 항상 취향이 좋은 친구다. 친구 생일이 되면 나도 이런 감동을 주고싶다. 진심이 느껴지는 선물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와 내 쌍둥이 동생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말하고 싶다. 목에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가을부터는 항상 목에 머플러를 두르고 다니는 나를 위해 준비해준 선물. 만난지 5년이 가까워지는 동안 참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남자친구는 항상 내게 부족하다고 한다. 사실 대학원 시절부터 갖은 고초와 역경을 함께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곁에 든든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로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항상 생일이 다가올때마다 '너무 무리해서 준비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항상 꽁꽁 숨겨두었다가 개구지고 기대 가득한 얼굴로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짠'하고 선물을 꺼내곤 한다. 아마 놀라는 내표정을 보고 싶어서 매번 이렇게 준비하는 거겠지만, 남자친구의 그런 얼굴이 보고 싶어서 내심 못이기는 척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곤 한다. 어쨌든 선물도 감동이고 남자친구에게도 고마워서 항상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다.
내 쌍둥이 동생이랑은 각자 좋아하는 향수를 선물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아예 같이 백화점에 가서 같이 골랐다. 나는 발렌티노 보체 비바를 골랐고, 동생은 구찌 블룸 시리즈를 골랐다. 그 와중에 착하디 착한 내 남자친구는 짐꾼으로 따라와줬다. 핑크와 레드로 꾸며진 발렌티노 매장에서 너무 어색해하는 남자친구가 귀여웠다.
이번 11월은 정말이지 시작부터 행복한 한 달이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배려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으로 꽉 채운 한 달이었다. 어쩌면 3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가장 나다운 생일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 가장 나다울 때,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지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연말을 보내는 시간을 항상 꿈꿔왔던 것 같다. 처음으로 그 꿈에 가장 비슷하게 닿아있는 생일을 보냈던 것 같다. 아직 한 해를 마무리하기엔 12월이 남았지만 이미 이번 년도에 이루고 싶었던 꿈은 다 이뤄버린 듯 꿈꾸는 것 같던 황홀한 시간들이었다.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적고 싶다.
하루가 길어지는 요즘 (1) | 2023.05.09 |
---|---|
마시고 먹고, 가구 조립하기, 그리고 탬버린즈에 진심인 나 (0) | 2023.03.21 |
나에게 있어 카페는 일종의 아틀리에였다. (0) | 2023.03.20 |
발레를 좋아하게 되었다. (0) | 2023.01.13 |